배성재 기자

등록 : 2020.01.28 15:12

“10년간 어르신께 받은 사랑, 유튜브로 보답할게요”

등록 : 2020.01.28 15:12

KBS ‘6시 내고향’에 10년 출연 ‘어르신 뽀로로’ 방송인 김정연

다음달 유튜브판 ‘고향버스’ 채널 개설

1990년대 초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로 활동

KBS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벼 ‘국민 안내양’이라 불린 김정연씨는 TV 밖에서 ‘노통령(노인들의 대통령)’으로 통한다. 노년 세대에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서다. 왕태석 선임기자

“10년간 ‘국민 안내양’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음달부터는 TV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어르신들의 말씀을 경청하며 함께 웃고 우는 ‘국민 안내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르신 뽀로로’로 통하는 방송인 겸 가수 김정연(50)씨는 “어르신들을 위한 제대로 된 유튜브 채널이 없다”며 이처럼 새로운 포부를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만난 그는 “정보도 제공하고 며느리 뒷담화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실 어르신들만의 소통 채널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2010년 1월 19일부터 KBS ‘6시 내고향’ 코너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에

출연해 ‘국민 안내양’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고향버스를 타고 전국의 시골장터를 누벼 어르신들 사이에선 명성이 자자하다. 방송 촬영장에서 김씨가 할머니들을 “엄마”로 부를 만큼 친근하다.

김정연씨가 2012년 전남 구례읍 내 미장원에서 '엄니'들과 함께 파마를 하는 모습. 김정연 제공

김씨가 코너 초기부터 유명해진 건 장터행 버스 속에서 반복된 일화 때문이었다. 좌석에 앉은 어르신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김씨는 “눈높이에서 경청하겠다는 자세의 표현이자 존경의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정작 “오십 줄인 저도 무릎 관절이 아프다”는 그는 촬영 때 배구 선수들이 착용하는 무릎 보호대를 찬다.

'국민 안내양' 김정연씨의 두 번째 하복 의상. 김정연 제공

어르신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비결을 묻자 그는 “경청이 가장 중요하지만 해맑고 순수한 5, 6세 아이와 대화한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라고 답했다.

촬영 중 엄마들 얘기를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토로했다. 한국전쟁을 겪었고, 대여섯 명의 자식을 키우고, 엄청난 시집살이에, 남편 바람기에….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건 이제 삶을 즐길 만한 시기가 왔는데 몸이 아파 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틀니를 껴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못 먹는다는 거죠.”

인터뷰 도중 그가 눈물을 글썽거린 사연이 있다. 지인의 시아버지가 폐암말기 투병 중이었는데 병문안 올 수 있냐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지난 3일 대구의 한 병원에 갔을 때다. “30분간 편한 모습으로 웃으며 왕년에 본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인생 얘기를 해주시는 거였어요”. 고통이 극에 달해 3분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는 환자였지만 김씨가 있는 동안 진통제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병문안 후 지인으로부터 “진통제보다 언니가 더 낫다”는 감사인사를 들었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고통을 잠시 잊을 만큼 김씨가 친숙한 탓이었다.

김정연(왼쪽 네 번째)씨가 1992년 서울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린 노찾사 10회 정기공연에서 다른 멤버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정연 제공

그는 대학교 4학년 때인 1991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가수로 합류한 이력도 있다. “삶을 바꾸는 건 화염병만이 아니라 노래로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기대와 달리 가수보다 콘서트 사회로 자신의 장점이 평가받자 1994년 미련 없이 나왔다. 2008년 1월 결혼 후 4월엔 트로트 앨범을 내는 파격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결혼 초반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년 봄 남편과 경기 김포시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하면서 쫄딱 망했어요.” 지금은 다 갚았지만 김씨 부부는 2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로 추락한 적도 있다.

'국민 안내양' 김정연씨가 지난해 바뀐 세 번째 하복을 입고 생방송을 진행 중인 모습. 김정연 제공

김씨는 “매번 극복 과정이 없었다면 ‘국민 안내양’이란 기회가 왔어도 준비가 안돼 현재 모습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촬영 전날 “엄마 가지 마”라고 붙잡는 늦둥이 아들이 마음을 흔들지만 전국의 어르신을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는 김씨. “초심을 잃지 않고 평생 ‘국민 안내양’으로 남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그는 또 다른 시골장터로 향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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