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희 기자

등록 : 2020.03.20 04:30

[36.5˚C] 스포츠 없는 세상, 코로나의 경종

등록 : 2020.03.20 04:30


※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바젤(스위스)과 프랑크푸르트(독일)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16강 1차전이 무관중 경기로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축구 경기장. 프랑크푸르트=AP 연합뉴스

2020년의 3월은 스포츠 기자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평상시 3월은 야구와 축구는 시즌 개막으로, 농구와 배구는 포스트시즌으로 뜨겁게 타올라 연중 가장 바쁜 달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를 집어삼켰다. ‘프로스포츠의 천국’ 미국도 백기를 들었다. 미국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MLB)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멈춰 섰다.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남자대학농구 토너먼트도 ‘코로나 광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럽 축구 5대 리그에 골프와 테니스까지 지역과 종목을 불문하고 막아선 코로나19는 이제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그 동안 올림픽이 취소된 건 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0년과 1944년 이후 한번도 없었다. 언어 종교 인종 이념을 허무는 스포츠의 위대함도 코로나 앞에선 흔들리고 있다.

‘술자리 안주’인 스포츠가 사라진 세상은 무미건조하지만 어느새 강제 적응도 되어가는 분위기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던 사람도, 프로야구가 없는 월요일 하루조차 못 견딜 것 같다던 사람도 말한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야구, 축구가 열리고 마느냐가 대수인가.“ 설령 스포츠가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다소 재미없는 삶일지라도 세상의 시계는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다.

‘농구 스타’ 서장훈에 따르면 그의 연세대 시절 스승 최희암 감독은 과거 선수들에게 누차 강조했다고 한다. “너희가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 봤냐. 너희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데도 대접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라고.

스포츠는 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탱되는 산업이다. 그저 당연한 명제처럼 여겨졌던 ‘팬이 없으면 스포츠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요즘처럼 피부로 느끼긴 선수도, 기자도 처음이다. 한국에서 ‘노쇼’로 공분을 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는 이제서야 팬들이 아쉬웠는지 무관중 경기에선 허공에 악수하는 ‘생쇼’를 벌여 헛웃음을 자아냈다. 사인 한 장, 사진 촬영 한번에 인색했던 선수들도 “팬 없는 스포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시끌벅적 응원하는 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게 ‘무관중 공포’를 체험한 경기인들의 반응이다.

외환위기 여파로 쌍방울 구단이 해체 직전이던 1999년 10월6일 전주에서 열린 쌍방울과 현대의 프로야구 경기엔 단 54명의 관중만이 찾았다. 구단 관계자 수보다 적은 프로야구 역대 최소 관중 기록이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6ㆍ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으로 절정을 구가한 프로야구는 최근 다시 인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선수들의 끊임없는 일탈, 팬서비스 논란의 반복으로 팬들의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랐다. 23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에서 코로나19는 결정타가 된 모양새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프로스포츠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는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이다.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는 데 희열을 맛보고, 누군가는 대리 만족을 느끼고, 하다 못해 고함이라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코로나19도 언젠가는 물러갈 것이고, 사람들은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전처럼 스포츠에 다가갈지, 그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다만 사람들은 지금도 스포츠가 재개되길 기다린다. 이런 때일수록 상실감을 치유해줄 수 있는 건 스포츠라 믿는다. 팬 한 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코로나19 종식 후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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