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선 기자

등록 : 2020.03.07 01:00

[방방곡곡 노포기행] 열한 번의 정성... 연꽃으로 빚어낸 백련막걸리

<33>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

등록 : 2020.03.07 01:00

80년 넘는 세월 3대를 이어 온 ‘하얀 연꽃 막걸리’

지난 1월 신평양조장에서 직원들이 고두밤을 식히기 위해 삽으로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막걸리는 쌀과 보리, 밀 등을 원료로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뒤 체로 걸러 내 만든 전통주다. 탁주, 농주, 재주, 회주 등 다양하게 불렸지만 가장 친숙한 이름은 역시 막걸리. ‘막 걸러낸 술’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막걸리를 언제부터 즐겼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삼국시대 이후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양조사’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막걸리는 처음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 전 국토에 전파돼 민족 고유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진위를 뚜렷하게 가리긴 어렵지만 흔히 농사를 지을 때 먹는 농주(農酒)로 전래된 토속성 짙은 술임은 분명하다.

신평양조장 발효실의 수십 년 된 옹기(항아리)에서 막걸리가 익고 있다.

그렇다고 막걸리를 농민만 마신 것은 아니다. ‘세조실록’ 8년(1462년) 4월 14일치에는 “내가 젊었을 때 화천군(花川君)의 집에 이르러...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시고 나왔다”라고 기록돼 있다. 임금도 막걸리를 종종 마셨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글에도 언급되는 등 막걸리는 우리 역사 속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은 술이다.

◇80여년, 3대 걸쳐 한 자리서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월,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큼하면서도 입맛을 당기는 독특한 냄새가 몸 속으로 스며든다. 건장한 체격의 직원 세 명이 찜통에서 고두밥을 삽으로 퍼내 넓은 냉각조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양조장 안을 하얀 김으로 가득 채운 고두밥 덩어리를 잘게 부수며 식히는 작업에 몰입했다.

신평양조장 김동교 대표가 발효실에서 숙성 중인 항아리의 막걸리를 젓고 있다.

인부들을 뒤로하고 왼쪽으로 돌아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가니 발효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발효실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벽을 빙 돌러 자리잡았다. 한쪽 벽 앞으로 놓인 작은 항아리에선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김동교 신평양조장 대표는 “밑술이 발효되면서 나오는 가스”라며 “ 80여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고 있다”고 말했다. 발효실에서는 80년 묵은 항아리도 볼 수 있었다.

신평양조장 발효실에 있는 항아리 안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다. 밑술이 발효되고 있다는 뜻이다

신평양조장은 충남 서북부 당진시 신평면에 자리잡은 양조장으로,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대에 걸쳐 막걸리를 빚고 있는 곳이다. ‘새로운 땅, 새로운 들’이라는 뜻에 걸맞게 신평(新平)면에는 넓은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다. 신평양조장은 이 곳에서 나오는 ‘해나루쌀’로 막걸리를 빚는다.

초기 신평양조장 전경. 신평양조장에선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 곳에서 80년 넘는 세월 동안 막걸리를 빚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신평양조장은 1대 김순식 대표가 1933년 스무 네 살의 나이에 창업한 ‘화신양조장’에서 비롯됐다. 1920년대 일제가 수탈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술에 세금을 부과한, 주세령 공포로 각 지역에서 대대로 이어져 오던 전통주 문화가 말살되고 근대 양조산업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한국전쟁 발발로 신평양조장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황해도에서 배를 타고 당진 해안가로 피난 온 양조기술자가 양조장에서 숙식하며 개량 누룩 형태인 ‘입국’ 기술을 전수한 것이다. 이후 북한군의 당진지역 장악 당시엔 신평양조장은 노동당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토가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기지개를 켜던 1970년대, 신평양조장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주류시장의 90% 이상을 막걸리가 차지하고 있을 때다. 2대 김용세(77) 옹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기술과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양조기술을 구현해 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신평양조장에 시련이 닥쳤다. 급격한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양조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은 것이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양조장 통폐합을 강제했다. 이 시기 김용세 옹은 10여년 간 심혈을 기울이던 ‘백련(白蓮)막걸리’ 개발에 성공했다. 변화한 소비자 취향에 맞춰 하얀 연꽃을 술에 접목시킨 막걸리다.

신평양조장 김용세 옹이 체험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백련막걸리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체험장에는 국내는 물론, 유럽 등 외국인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백련막걸리는 신평양조장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 백련잎을 발효과정에 첨가해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낸 백련막걸리와 ‘백련 맑은 술’은 소비자와 전문가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대한민국 명품주 반열에 올랐다. 2009년 청와대 만찬장 막걸리로 선정됐고, 2012, 2013년에는 대한민국 유리술 품평회 ‘살균막걸리’ 대상, ‘약주’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김용세 옹이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선정되면서 양조기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신평양조장은 현재 김용세 옹에 이어 3대 김동교(47) 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김동교 대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다 2010년 퇴직한 뒤 신평막걸리에 제2의 인생을 걸었다.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막걸리 제조는 아버지인 김용세 옹이, 경영관리는 김 대표가 맡아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열 한 번의 정성을 담은 백련막걸리

백련막걸리는 열 한 번의 정성스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시작은 쌀 씻기와 불리기다. 최소 200㎏에서 최대 400㎏에 달하는 쌀을 커다란 통에 담은 뒤 꼼꼼하게 씻는다. 이후 두 시간 정도 불린 뒤 물을 빼내면 첫 번째 과정이 마무리된다.

신평양조장 입구 전경. 초기 양조장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씻어 불린 쌀을 커다란 통에서서 1시간 정도 쪄내 고두밥을 만들면 두 번째 과정이 끝난다. 고두밥은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 넒은 판으로 만들어진 냉각조에 옮겨 담아 술 담그기에 적당한 온도(30℃ 이내)로 식힌다. 삽으로 덩어리진 쌀을 잘게 부수는 동시에 냉각조 밑으로는 찬 바람을 불어 넣는데, 열 한번의 과정 중 고된 작업으로 꼽힌다.

그렇게 찌어낸 고두밥의 일부를 누룩으로 3일간 숙성시켜 쌀누룩을 만들고, 여기에 물과 효모를 넣어 막걸리 원액이 되는 밑술을 만든다. 밑술이 완성되면 커다란 항아리에 식힌 고두밥과 물을 함께 넣어 발효원액의 양을 늘린다. 이 항아리에 깨끗하게 씻어 말린 백련잎을 잘게 썰어 넣고 일주일 정도 더 발효시킨다. 그리고 발효된 막걸리에서 백련잎과 지게미를 걸러낸 뒤 원액을 물로 희석해 적당한 도수의 막걸리를 완성한다.

김 대표는 “일반 시중에 가장 많이 유통하는 백련막걸리 외에도 말은 술, 생막걸리 등 고급 막걸리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평양조장으로 견학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체험활동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강남역 전문점 8년째 성업 중

김 대표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가업을 승계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바로 ‘디자인’이었다. 페트병에 담아내던 막걸리는 여전히 ‘저렴한 술’, ‘동네 아저씨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컸던 게 사실. 김 대표는 이런 이미지에서 탈피해 보다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페트병보다 원가가 세 배 이상 비싼 유리병을 용기로 택했다. 그 위의 ‘하얀연꽃 백련 막걸리’ 디자인은 화가인 어머니와 누나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김 대표는 “2010년 당시 막걸리 열풍이 불었고, 아버지와 박람회 등을 다니면서 시음회를 하면서 사업화가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잇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과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지역 햅쌀로 빚어 원가가 비싼 막걸리를 취급하는 중간 유통업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중간 유통단계 없이 직접 고객을 찾기로 했다.

지난 2013년 서울 강남역 인근에 양조장 직영 막걸리 전문점을 열었다. 고객에서 신선한 막걸리를 직접 제공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보다 신선하고, 부드러운데다 깔끔함까지 더해지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열광했고, 2018년부터는 여행사와 연계해 외국인 단체여행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로 벌써 8년째”라며 “강남역 인근에서 장수하는 외식업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막걸리를 알리는 접점으로 음식점을 선택한 것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은 강남역을 택한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신평양조장에선 막걸리를 직접 만들고, 원액을 직접 짜고, 시음도 할 수 있다. 막걸리 빚기(단양주 빚기) 체험과 막걸리 소믈리에 클래스, 증류주 체험은 2시간 코스로 진행된다. 누룩전 빚기 체험은 1시간 30분 정도면 즐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항아리에서 발효되고 있는 막걸리 원액의 신선한 향을 맡아보거나 날짜 별로 숙성돼 가는 막걸리를 시음, 비교해볼 수도 있다. 70년이 훌쩍 넘은 목조 천장과 서까래, 막걸리통, 양조도구, 고서적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체험프로그램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끄는 메뉴다. 김 대표는 “강남역 막걸리 전문점과 당진 신평양조장 체험객은 1만명을 넘어섰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내국인은 물론, 노르웨이, 폴란드,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이스라엘,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손님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현대화와 새 막걸리 개발

신평양조장에선 현재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 가장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맑은 술 등 네 가지 술을 빚고 있다. 생산된 술은 지역은 물론, 강남역 전문점을 통해 시중에 직접 선보이고, 이마트와 인천공항 면세점 등에 납품하는 등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신평양조장(A)과 백련양조문화원(B) 위치. 카카오맵 캡처

여기서 안주하려 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통주 부흥과 지속적인 발전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전통주 수요가 서서히 줄고 있는 탓이다. 그는 “전통주 수요는 줄어도 다양한 술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말했다. 현대화된 양조장 신축, 다양한 수요에 부응할 신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그의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양조장 뒤편 연꽃 재배지에 현대화된 양조장과 체험시설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마침 신평양조장이 농촌자원복합산업화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국비 10억원을 지원받게 돼 부담도 크게 덜었다. 김 대표는 “지역 특화작물 등을 활용한 고급 증류주 등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견학, 체험시설도 늘어나는 만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 글ㆍ사진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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