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6.10 15:08

#덕분에…당신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건 지침을 잘 따르는 것뿐

등록 : 2020.06.10 15:08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중(138)] 머나먼 귀국길 3편

입국 이후 코로나19 검역을 위한 여러 과정을 거치며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계속 신세를 졌다. 격리 시설에 도착한 버스에서 입소자를 파악하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고맙습니다.

5월 1일 오후, 파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인천공항 활주로로 유연하게 진입하고 있었다. 드디어 한국이다. 기다리는 이들의 품이 있는 곳, 그리고 우리 집이 있다. 이 시국에도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전광판이 첫인사를 건넨다.

무빙워크에 오르자 옆으로 현수막이 늘어서 있다. 격리자를 위한 앱 설치 및 해외 입국자의 교통과 관련한 안내다. 일시 정지된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는 방법까지 ‘친절 끝판왕’이다. 입국 심사 전 검역부터 줄을 섰다. 코로나 시대에 어디서나 익숙해진 줄이다. 모든 창구에서 발열 검사를 했다. 남자는 이마, 여자는 목 부위에 검사기를 댔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모두 36도 대로 기록되고, 탕탕의 목에는 사원증 같은 목걸이가 걸렸다. 특별검역신고서를 들고 다음 단계로 들어섰다. 직접 전화를 걸어 수신 가능한 연락처를 확인했다. 이후엔 내국인용과 외국인용으로 줄이 갈린다.

내국인은 격리통지서와 격리통지서 수령증 두 장의 서류만 작성하는데 비해, 외국인은 활동 범위를 명시한 이동제한통지서 및 그 수령증을 더해 네 장을 써야 했다. 외국인 등록증(한국 거주를 허용하는 외국인용 주민등록증)을 소유한 탕탕 역시 네 장의 서류를 작성했다. 거주지가 제주이고 한국인 아내가 동행했음에도 외국인은 외국인이었다. 검역은 착착 진행됐다. 4월 1일부터 강화된 수칙대로 업무를 처리해온 검역 직원들의 수고가 뼛속 깊이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일 게다. 내가 그 감사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지침을 잘 따르는 것뿐이었다.

부주의한 사람도 절대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안내 사항을 적은 현수막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검역의 1차 관문. 보통 때와 달리 발열 검사부터 철저히 했다.

검역의 2차 관문은 입국자의 수신 연락처를 직접 확인하는 일. 줄을 보라. 대부분 자진해서 거리를 두었다.

해외입국자의 필수 앱 2가지. 기존의 자가진단 앱에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이 더해졌다.

자가진단 앱 화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짐을 찾았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걸까. 입국장의 자동문이 열리자, 입국자 격리 시설로 가는 ‘길 안내’ 데스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인 나는 바로 집으로 가도 되지만, 탕탕은 아니었다. 외국인은 무조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돼야 했다. 경찰 한 명이 인솔하는 가운데 공항 밖으로 나갔다. 1년 만에 맡는 대한민국의 공기였지만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한국어가 서툴다. 나도 격리 시설로 따라갈 수 있는지 물었으나 탕탕의 검사가 진행되는 중에 부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란 답만 돌아왔다. 나의 물음에 답할 담당자는 검사소 끝에 있는 다른 경찰이었다. “보호자 자격으로 가능한 걸로 아는데, 다시 확인한 뒤 알려드릴게요.”

그 모습, 참 아름다웠다. 당황하는 기색 없이 모든 절차가 이뤄지고, 모르는 건 묻고 확실히 행동했다. 체계적이었다. 보호자 겸 통역자인 나도 동행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이 최전선에서 방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천공항의 코로나19 워킹스루 진료소. 육군의 인솔 아래 의료진이 힘쓰고 있었다. #덕분에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

인천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중에도 안경 착용자이자 콧대 높은 탕탕은 칠레의 ‘야매’ 마스크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격리 시설 내부의 이부자리와 도시락, 새 수건, 그리고 3일간 씻지 못한 1인.

관광버스 두 대가 도로에 서 있었다. 언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버스 기사에게 물어 천안으로 간다는 답을 들었다. 입국자를 좀 더 태워 약 2시간30분 후에 출발할 예정이란다. 호텔이나 수련원 등 전국 각지에 격리 시설이 분포돼 있고, 어디로 갈 지는 승객이 아니라 검역 당국에서 결정한다고 했다. 현재 외국인 입국자가 많이 줄어든 상태지만 공항과 격리 시설 사이를 하루 3번 이상 왕복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일부 외국인은 한국에서 체계적인 검사를 받기 위해 입국한다는 소문이 떠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튼 나도, 탕탕도 태어나서 처음 가는 천안이었다.

장시간 비행에 지쳐 버스 안에서 실신 상태에 빠졌다가 실내등이 켜진 후에야 겨우 눈을 떴다. 도착한 곳은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통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입소자 수를 파악했다. 영화에서나 본 장면이다. 탕탕과 나는 같은 방에 배치되고, 신발 밑창까지 소독을 거쳐 다시 신상을 기록했다. 인솔 받아 배치된 방의 철문이 닫혔다. 격리였다. 펄펄 끓는 온돌방엔 저녁거리용 도시락과 이부자리, 세면도구 등이 갖춰져 있었다. 안내문을 유언장처럼 읽어 내려갔다. 검사 결과는 최소 6시간 이후에 나온다. 외부 출입이나 면회 모두 금지다. 음성 판정을 통보받은 시점으로부터 가능한 2시간 후 퇴소한다는 것까지 상세히 명기돼 있었다. 탕탕이 검사를 받은 건 오후 6시 무렵,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음날 오전 10시,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탕탕도 함께다. 새벽 6시 무렵, 눈을 반쯤 감은 채 탕탕의 음성 판정 통보를 들었다. 졸린 상태로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제주 지역번호 전화가 휴대폰을 울린다. 제주시 격리 담당 공무원의 환영 및 상황 파악 전화였다. 천안행 외국인 승객 모두 무탈했고, 원점인 인천공항으로 귀환했다. 제주에 있는 우리 집이 가깝고도, 참 멀게 느껴졌다.

인천공항에선 흡연실 역시 분리된다. 일반인과 입국자가 대비되는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해외 입국자의 집으로 가는 길 안내소. 통제선 내에 기다리는 동안 요기를 할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오가는 제주도민 수송 차량.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는 제주도민이 우리 둘뿐이라 더욱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입국 이후 늘 황송했다.

현재 인천공항에는 해외 입국자 전용 공간이 따로 있다. 엄격한 통제선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다. 대중교통 이용도 불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해외 입국자 전용 버스 승차장 안내 현수막을 따라갔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제주도민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택시 일정 간격으로 운행하는 6편의 수송 차량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시차 때문에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온 상태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요금을 확인하고 바로 결정을 바꿨다. 2시간의 기다림과 6만5,000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기다린 김에 더 기다릴 수 있었다.

폭풍 감동은 이어졌다. 수송 차량의 인자한 기사는 기다리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실제 고생하는 건 그 자신일 텐데 우리의 안위를 걱정해 주다니. 그러나 이동 중 안내문자를 받은 후부터 힘이 쭉 빠졌다. 국가를 불문하고 해외 입국자는 제주공항에서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유럽발 승객은 입국한 지 3일 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란 정보를 확인한 바 있고, 인천공항에서 한국인에게 귀가를 허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검사하는 것까진 괜찮다. 결정적으로 흔들린 대목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대기해야 한다는 지시였다. 다시 6~24시간 대기라니, 대체 어디에서? 미리 알았다면 나도 인천공항에서 검사를 요청했을 것을! 만약의 경우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천안보다는 집이 있는 제주가 낫다는 생각도 스쳤다. 흥분은 여기까지, 현지 사정은 닥쳐보면 알 것이다. 제주행 아시아나 항공은 맨 뒷좌석에 해외 입국자를 배치했다. 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울과 제주를 그리 왕복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던 제주의 풍경에 울컥했다. 가까이 있었기에 눈감았던 일상이다.

안내자의 인솔로 따라간 제주공항의 진료소. 돌하르방도 코로나19 예방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진료에 앞서 마음이 떨리는 건 이유가 없었다. 양성 판정이 나올까 봐? 아플까 봐? 왜였을까.

제주공항의 해외 입국자 대처는 자진 신고 시스템이었다. ‘I love Jeju’라는 스티커를 한쪽 팔에 붙인 채 호위를 받으며 워킹스루 진료소로 향했다. 탕탕은 음성 판정서로 통과하고 검사 대상은 나 혼자였다. 긴 면봉을 코에 한 번, 목에 한 번 깊이 집어넣는다. 아플 거라 예상했으나 해괴한 느낌이 강했다. 자, 이제 나의 행방은 어찌될까. 안내문은 자가용으로만 이동 가능하다고 했다. 어디에선가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가 울렸다. 집으로 가는 수송 차량이 대기 중이란다. 우리가 없던 1년 사이 새로 닦인 길을 따라 낯선 제주를 보았다. 귀곡산장 같은 텅 빈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우리집이다. 이른 새벽 칠레 산티아고를 출발해 제주 집에 도착한 건 사흘 밤이 지나고 어둑해질 저녁 무렵이었다. 꼬박 4일이 걸렸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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