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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의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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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2월 8일, 오산고 강당에서 열린 함석헌옹의 영결식에는 각계 인사 등 2천여 명이 참석,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대의 기억] 사상가 함석헌 선생 별세


만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후략

서울 혜화동 대학로를 걷다 보면 길거리에 함석헌 선생의 시비(詩碑)가 나온다.‘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제목과 함께 새겨진 글귀를 가만히 읽어보면 누구나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2월 4일 새벽 ‘한국의 간디’,‘싸우는 평화주의자’로 불리며 일제시대와 해방 후 격동의 시대를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아온 함석헌 선생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국운이 쇠퇴하던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전파된 기독교로 인해 개화사상에 쉽게 눈을 떴고 평양고보와 정주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유학 길에 올라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귀국해 오산교보 교사로 재직했다.

광복 후 북한이 공산정권에 넘어가자 서울로 월남한 선생은 1948년 서울YMCA에서 성서읽기 강좌를 개설했고 56년 장준하 선생이 주도한 ‘사상계’에 글을 발표하면서 사회활동의 전면에 서기 시작했다.

톨스토이의 보편적 휴머니즘과 간디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한 그는 군정 및 베트남파병, 그리고 한일 굴욕외교와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끊임없는 저항운동을 전개하면서 85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길다란 수염과 하얀 백발, 두루마기와 고무신으로 표상되는 그는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고 탁월한 문장력과 웅변은 한국인의 인권과 평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존경 받는 지식인을 찾기 힘든 요즘 선생의 글과 하얀 백발이 더욱 그리워진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등록: 2017.02.04 04:40 수정: 2017.02.06 00:12 손용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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