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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 투병 중이던 이주일씨가 2002년 3월 경기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생전 한국일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씨 옆에 한국일보 기자들이 쾌유를 빌며 보낸 화환이 놓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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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언이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멀고도 험했다" 는 이주일의 웃음 속에는 슬픔보다 진한 눈물이 감추어져 있었다. 정계 외도 후 SBS 투나잇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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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며 생전 왕성한 활동을 하던 모습.

[시대의 기억] 못 생겨서 그리운 코미디 황제


“못 생겨서 죄송하다”며 더듬댔지만 그래서 더 국민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했던 한국 코미디의 큰 별 이주일(본명 정주일)씨가 2002년 8월 27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2세.

1980년대, “콩나물 팍팍 무쳤냐” “일단 한 번 와보시라니깐요”를 외치며 팝송 ‘수지Q’에 맞춰 오리 춤을 흔들던 그는 평소 말마따나‘뭔가 보여준’당대 최고의 희극 배우였다. 그의 사망 소식에 온 국민이 우울했던 이유는 단지 유명 코미디언이어서가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시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 강원 고성에서 태어나 악극단을 떠돌며 무명생활을 이어가던 이주일은 1977년 이리(익산)역 폭발 사고 때 가수 하춘화를 구해준 인연으로 무대에 서게 됐고 이후 못 생긴 얼굴을 이용한 특유의 해학으로 TV와 희극계를 주름잡았다. 당시 2주일 만에 스타로 떴다고 해 정주일 이름을 이주일로 바꿨다.

92년, 14대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던 그는 4년 임기를 마치고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정계를 떠난 후 다시 본업에 복귀했지만 건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7대 독자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담배에 의지하던 그에게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2001년, 시한부선고를 받고도 금연 홍보대사에 나서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사라지던 2002년 늦여름 조용히 세상과 이별했다. 그가 세상을 뜨기 5개월 전인 2002년 3월, 한국일보 기자들은 경기 분당 자택에서 투병 중이던 이주일씨를 방문해 쾌유를 빌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등록: 2016.08.27 04:40 수정: 2016.08.27 12:54 손용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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