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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2000년 3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가진 후 링을 떠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대의 기억] 박치기왕 김일 링을 떠나다


기자가 꼬맹이 시절이니 60년대 말에서 70년 대 초쯤 되겠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들었다. 당연히 그 귀하다는 흑백 TV를 구비한 집이다.

나무 평상 아래 모인 어르신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왁자지껄 얘기를 나누다 ‘땡’하고 공이 울리면 모두 손에 땀을 쥐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김일 선수의 경기는 항시 초반이 고전이었다. 반칙을 일삼는 상대선수에게 화가 날 정도로 당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링에서 벌떡 일어나 박치기를 작렬하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를 불렀다. 어느 정도 짜놓은 각본에 움직인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온 국민의 영웅이었던 박치기왕 김일이 2000년 3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재일교포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로, 한국보다 일본에서의 활동이 많았던 그는 이보다 앞선 1995년 일본 도쿄돔에서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으나 국내에서는 프로레슬링의 인기 하락과 비용문제로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행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1929년 전남 고흥 거금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씨름꾼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일본 잡지에서 역도산을 접하고 스물 일곱 나이에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하생이 된 후 스승으로부터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는 뜻의 ‘대목’ 호칭을 부여 받고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최고 스타로 떠오르던 그는 70년 대 후반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시대 조류와 함께 프로야구, 씨름의 인기에 눌려 차츰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땀이 어린 장충체육관에서의 은퇴식 후, 박치기왕 김일은 합병증을 이기지 못하고 2006년 가을 영원히 링과 이별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등록: 2017.03.25 04:40 손용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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