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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희로 활동하던 마타하리의 매혹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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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마타하리, 총탄에 스러지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0월 15일, 40을 갓 넘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 프랑스 정부에 의해 사형 집행대에 섰다. 이중간첩 혐의로 파리 교외에서 총살형에 처해진 그는 유명 댄서이자 고급 콜걸이었던 마르가레타 기르트루다 젤레. 본명보다는 말레이어로 눈과 새벽을 뜻하는 ‘마타하리’로 더 알려져 있다.

1876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마타하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복무한 군 장교와의 결혼에 실패한 후 파리로 이사했고 자바 섬에서 온 공주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클럽에서 동양식 춤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출신과 경력에 대해 갖가지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지만 마타하리는 빼어난 미모와 고혹적인 춤으로 파리 사교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고위층 남성들과 연합군 장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독일이 그를 포섭해 ‘H21’이라는 암호명을 부여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하리는 연합군 장교들을 유혹해 군사기밀을 독일 정보기관에 제공하기로 했다. 2만 마르크를 받는 조건이었고 당시 그가 제공한 정보들은 연합군 5만명의 목숨값에 달한걸로 알려져 있다.

스파이 활동은 영국정부의 외교통신 해독으로 들통이 났다. 파리에 거주하던 마타하리의 숙소를 급습한 경찰은 화학처리를 해야만 보이는 비밀잉크를 발견했고 즉시 독일과 프랑스 간 이중간첩 혐으로 그를 체포했다.

파장은 컸다. 외부의 적과 대치 중에 고위 장교들과 당직자들이 줄줄이 소환되자 프랑스정부는 당황했고 서둘러 그를 처형하기로 결심했다. 총살형은 파리 교외에서 신속하게 이뤄졌다.

“마타하리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고 한순간 비틀거리더니 병사들을 노려본 후에 허리를 꺾고 뒤로 넘어졌다”처형 장면을 참관했던 영국 기자 헨리 웨일즈가 전한 내용이다.

1999년, 영국정보부 MI5는 정보보고서를 통해 프랑스 측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고 마타하리의 스파이 활동은 명쾌히 밝혀지지 못한 채 논란으로 남아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등록: 2016.10.15 04:40 손용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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