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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왼쪽) 2단이 1988년 1월 한국기원에서 서봉수 9단과 국기전 8강전 대국을 갖고 있다.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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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말에서 90년대를 지나는 근 15년 간, 스승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사제도전기는 한국 바둑사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1989년 1월, 조훈현(왼쪽) 9단과 이창호 3단이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대의 기억] 13세 인간 알파고, 국수(國手)를 꺾다


1988년 1월 7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 바둑계의 새해를 여는 국기전(國棋戰) 본선 8강 대진표가 가려졌다. 최대 관심은 혜성처럼 등장한 13세의 신예 이창호 2단과 타 기전인 국수 타이틀 보유자 서봉수 9단과의 대전이었다.

26일, 흑을 쥔 이 2단은 스물 두 살이 많은 서 국수와 마주앉았고 침묵 속에 대국은 시작됐다. 5시간을 넘어서며 돌 놓는 소리가 그치자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서 9단은 돌을 거둬들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정말 잘 둔다. 많이 컸네”

누구도 예상 못했던 13살 소년의 승리였다. 충격을 받았을 서 9단의 태도 또한 대가다웠다. 복기를 시작하며 스스럼없이 이창호 2단에게 질문을 던졌고 이 2단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발개지며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후 서 9단은 아들 뻘의 이창호에게 불치하문(不恥下問·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의 자세를 잊지 않았다.

서 국수를 8강전에서 누른 이 2단은 4강전에서 비록 노영하 7단에게 패하고 말았지만 프로바둑 세계에서 무시 못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 해 국기전은 스승 조훈현 9단이 타이틀을 방어했다.

지난 해 방영된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프로기사 최택 사범의 실제 모델이었던 이창호 9단은 조훈현에 이은 1인자 계보가 이세돌 9단 등에게 넘어간 뒤, 2010년 11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마스터’라는 아이디로 신분을 감추고 고수들을 연파한‘알파고’가 사제지간인 조훈현, 이창호 9단에게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조 9단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이 9단은 인터넷바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등록: 2017.01.07 04:40 손용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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