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이메일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필자의 최신기사

[정민의 다산독본] “일렁이는 물풀 춤사위에 나도 유영” 초당의 달밤을 사랑하다

<82ㆍ끝> 둘째 아들 정학유 ◇8년만에 만난 아들 다산이 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20일째 되던 1808년 4월 20일,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2019.10.03

[정민의 다산독본] “화초 향기롭고 솔은 푸르구나” 귀양 7년 만에 쉴 곳 찾다

<81> 다산 초당 입주 ◇귤동의 다산서옥 1808년 3월, 다산은 묵재를 떠나 귤동의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문매반가와 고성사, 그리고 묵재 이후 네 번째였다. 유배는 ...

2019.09.26

[정민의 다산독본] 궁핍한 묵재 생활… 아끼던 조카까지 잃어

<80> 묵재를 찾은 손님과 정학초의 죽음 ◇묵재를 찾은 윤규렴 다산은 제자 이정의 집에 얹혀 산 1년 8개월간이 그다지 편치 않았던 듯하다. 아니면 훗날 사제 간에 ...

2019.09.19

[정민의 다산독본] 다산의 작은 쪽지 하나 버리지 않고 책으로 만든 제자

<79>정학연의 두륜산 기행과 묵재 시절 ◇산방 생활과 정학연의 두륜산 기행 1805년 10월 9일, 보은산 고성사로 올라온 다산 부자는 두 달 넘게 그곳에 머물며 ‘승암예문...

2019.09.12

[정민의 다산독본] “모르는 것을 물어라, 질문과 대답을 기록하라” 다산의 ‘문답 교육’

<78> 고성사에서의 겨울 나기와 문답식 학습법 ◇세 개의 ‘견월첩(見月帖)’ 1805년 4월 17일에 아암 혜장과 만난 이후, 다산의 일상에 갑자기 생기가 넘쳤다. 다산은 ...

2019.09.05

[정민의 다산독본] 다산과 혜장 스님 교유… 잊힌 차문화 중흥 기폭제가 되다

<77> 다산과 불교와 차 ◇강렬한 쏠림과 묵은 인연 다산이 만덕사에서 혜장과 만나 ‘주역’을 두고 하루 밤 토론을 벌인 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한 쏠림을 느꼈다. 며...

2019.08.29

[정민의 다산독본] 종교와 나이 뛰어넘어… 다산, 진정한 교유 대상을 만나다

<76>만덕사의 새 주지 아암 혜장 ◇취해 살다가 꿈 속에 죽는 인생 제자 황상의 5촌 당숙인 황인태는 다산보다 나이가 16세나 위였다. 다산은 그와 허물없이 왕래했다. 1...

2019.08.22

[정민의 다산독본] 생각지 않게 마음 맞는 벗 사귀었건만… 형님 걱정에 눈물 쏟다

<75> 보리자 황인태와 ‘황씨체화집’ 다산은 강진에 내려온 지 11개월 만인 1802년 10월에 제자를 받아 서당을 열었다. 조정에서는 다산 형제를 잡아 올려 문초해야 한다...

2019.08.15

[정민의 다산독본] 제자 따라 맞춤형 수업 한 다산, 날 좋을 땐 제자들과 나들이

<74> 단계별 학습과 전공 구분 ◇학질 끊는 노래 스승의 ‘삼근계’를 받아 든 1802년 10월 17일 이후, 황상은 스승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발분해서 공부했다....

2019.08.01

[정민의 다산독본] "내제자 뒀다" 소문에 자녀교육 부탁 이어져... 주가 골방이 서당으로

<73>사의재 서당 ◇아! 삼근계(三勤戒) 내제자 황상을 들인 뒤로 다산의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다가 곁에서 심부름을 해 줄 손길을 얻자 숨이 트였다....

2019.07.25

[정민의 다산독본] 주막 앞서 공 차며 놀던 아이를 내제자로… 다산, 평생을 피붙이처럼 아껴

<72> 주막집 노파와 내제자 황상 ◇앵두와 죽순 1802년 여름, 현감 이안묵은 기어이 하찮은 꼬투리를 잡아서 다산을 상부에 무고했다. 애초에 있지도 않던 일이어서 조사를...

2019.07.18

[정민의 다산독본] 현감 서슬에 고달픈 강진 유배생활 시작… “밟아라, 안 죽는다” 오기

<71> 동문 매반가(賣飯家) ◇막막한 어둠 11월 23일, 다산은 혹한 속에 누리령을 넘어 강진 읍내로 들어섰다. 나주 율정에서 형님과 헤어진 뒤 혼자 오는 내내 혹한의...

2019.07.10

[정민의 다산독본] 새 유배지 강진에는 다산을 노리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70> 강진 가는 길 ◇악연의 끝 자리 당시 다산은 10월 20일 밤에 체포되어 27일 옥중에 들어갔다가, 11월 5일에 강진 유배가 결정되었다. 다산은 감옥에서 ‘옥중에...

2019.07.04

[정민의 다산독본] “큰 서양 배로 조선 압박” 적은 작은 천 조각, 조정을 충격에 빠뜨리다

<69>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과 배론 토굴 황사영(黃嗣永ㆍ1775~1801)은 천재였다. 16세 나던 1790년에 진사시에 당당히 급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2세...

2019.06.27

[정민의 다산독본] 분노하다, 자조하다… 체념한 다산, 각종 저술 정리하며 마음 추슬러

<68> 장기(長?)의 노래 ◇흉몽 1801년의 신유박해는 정약종의 책롱이 발각된 것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어린 국왕을 끼고 정권의 전권을 틀어쥐게 된 노론 벽파가 남인 공...

2019.06.20

[정민의 다산독본] “이렇게 끝날 줄 왜 몰랐을까요” 유배길 다산, 부친 묘소서 회한의 눈물

<67> 귀양지의 다산과 주문모 신부의 처형 ◇하담의 작별 인사 1801년 2월 29일에 도성을 떠난 다산은 3월 2일 유배길에 충주의 하담(荷潭) 선영을 들러 성묘했다. ...

2019.06.13

[정민의 다산독본] 천주교회 거목들 줄줄이 처형… 다산은 검거 협조하고 가까스로 목숨 구해

<66> 처형과 유배 ◇추국청의 두 형제 다산이 곤장 30대를 맞고 실려 나간 이튿날인 1801년 2월 12일, 책롱 사건의 당사자인 정약종이 추국청에서 심문을 받았다. 오...

2019.06.06

[정민의 다산독본] ‘정조 국상’ 끝나자 결국 체포된 다산, 곤장 30대 맞고 실려 나가

<65> 쓰러진 거목과 굳게 닫힌 문 ◇영원한 작별과 재앙의 기색 1800년 6월 28일 정조의 갑작스런 승하 소식이 조야를 뒤흔들었다. 보름 전인 6월 12일 밤...

2019.05.30

[정민의 다산독본] ‘삐딱한 글씨체’ 이유로 내쳐진 다산, 천주교도 색출 임무를 맡다

<50> 다산, 금정찰방으로 좌천되다 이가환의 해명 상소 채제공이 글을 올린 이튿날인 1795년 7월 9일, 공조판서 이가환이 박장설의 상소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

2019.05.23

[정민의 다산독본] 시골역장으로 좌천된 다산의 진짜 임무는?

<51> 3품관 승지서 7품 금정찰방 강등된 다산 금정역의 위치와 찰방의 역할 다산이 좌천되어 내려 간 금정역(金井驛)은 어디에 있었을까. 금정역은 원래 충남 청양군 남...

2019.05.23

[정민의 다산독본] 정약종이 회장 맡은 명도회, 천주교 신자를 급속히 늘려나가

<63> 밀사와 밀정, 그리고 명도회 ◇주문모 신부의 행보 1795년 5월 11일, 다산의 도움으로 계동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던 주문모 신부는 남대문 근처 강완숙 집 장작 광 ...

2019.05.23

[정민의 다산독본] ‘운명의 1800년’ 정조 급서…. 다산, 세상과 통하는 모든 문 닫히다

<64> 한양 복귀와 암운 ◇연암 박지원과 김건순의 만남 1796년쯤 20세 초반의 젊은이가 연암 박지원을 불쑥 찾아왔다. 연암은 그의 이름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그는 병...

2019.05.23

[정민의 다산독본] 표 한 줄에 가호별 토지부터 솥의 개수까지… 곡산 전체 손금 보듯

<62> 침기부 종횡표의 위력 ◇정당에 내걸린 곡산 지도 곡산부사 부임 직후 다산의 잇단 선정(善政)은 백성들의 신망과 기대를 한껏 높였다. 다산은 자리를 잡자마자 고을 ...

2019.05.09

[정민의 다산독본] “다산 아직 천주학 못버렸다” 중신 반대에 눈물 삼키며 다시 지방으로

<60> 곡산부사로 다시 떠나다 ◇빗나간 승부수 다산의 ‘변방소’는 어쨌거나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고위직의 관리가 자신과 천주교에 얽힌 오랜 인연을 솔직하게 밝히고...

2019.04.25

[정민의 다산독본] “천주교 틀에 가두는 사슬 끊어달라” 탄원에 면죄부를 받다

<59> 회심의 승부수 ‘변방소’ ◇정조의 집착 다산은 1796년 11월 16일에야 마침내 규장각 교서관으로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이때의 상황은 ‘규영일기(奎瀛日記)...

2019.04.18

[정민의 다산독본] “천주교 배신” 낙인 찍힐까 벼슬길 복귀 거부

<58> 차려진 밥상을 걷어찬 다산 ◇정조의 계획 정조는 1795년 12월 20일에 이정운(李鼎運)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했다. 같은 날 다산을 용양위(龍?衛) 부사직(副...

2019.04.11

[정민의 다산독본] “퇴계를 따르겠다” 취지 반성문 작성… 좌천 5개월 만에 서울로 돌아와

<57> 또 하나의 반성문, 도산사숙록 금정에서의 세 번째 미션 이존창 검거와 봉곡사 강학회를 마친 다산은 마지막 하나의 미션을 더 수행했다. 금정에 내려온 직후 나주목사...

2019.04.04

[정민의 다산독본] 돈 달라는 협박 편지, 다산의 반격은…

<56>서울에서 온 편지 ◇매서운 감시의 눈길 속 위로와 격려 1795년 당시 다산의 동향은 서울 쪽에도 속속 보고가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감시의 눈길도 매서웠다. ...

2019.03.28

[정민의 다산독본] “열에 두셋만 믿을 만하다” 혹평하면서도 성호 문집 정리 밀어붙여

<55> 성호에 대한 다산의 평가 ‘서암강학기’ 참석자 명단에 누락된 이승훈 한편 ‘서암강학기’에 실린 13명의 참석자 명단에는 빠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2019.03.21

[정민의 다산독본] 남인 학자 13명 봉곡사서 열흘간 학술 세미나… ‘가례질서’ 초고 정리

<54> 봉곡사에서 열린 성호 강학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1795년 10월에 이존창의 검거가 이루어지자, 숨을 돌린 다산은 정조와 채제공을 떠올리며 다음 스텝...

2019.03.14

[정민의 다산독본] 남인이 싫어한 다산, 성호 문집 정리 명분으로 교류 시도하지만…

<53> 전향과 충돌 이삼환이란 인물 금정찰방 시절 다산은 ‘서암강학기(西巖講學記)’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을 지었다. 천주교를 극력 배척하는 성호 우파 남인과의 ...

2019.03.07

[정민의 다산독본] 다산에 순순히 잡힌 이존창… 주문모 신부 보호하려 서로 ‘체포’ 묵계

<52> 내포의 사도 이존창 검거기 성주산의 일 다산은 금정찰방 시절에 쓴 일기 ‘금정일록’에서 천주교라는 말을 몹시 아꼈다. 천주교도 검거 사실도 드러내서 적지 않...

2019.02.28

[정민의 다산독본] ‘중국인 신부 도피’ 내막 모르는 공서파, 다산 대신 이가환ㆍ정약전을 공격

<49> 도발과 응전 공서파, 다시 포문을 열다 1795년 5월 11일 저녁, 최인길, 윤유일, 지황 세 사람이 붙들려 와서 12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에 고문 끝에 죽었...

2019.02.07

[정민의 다산독본] 수레 가득찬 공문을 문서 한 장에 정리… 능력으로 ‘천주교’ 문제를 만회

<48> 채제공과의 갈등과 행간을 읽는 다산의 안목 균열과 틈새 다산에게 채제공은 든든한 후원자였고, 채제공에게 다산은 험한 일을 한발 앞서 처리해주는 책사이자 돌격 대장...

2019.01.31

[정민의 다산독본] 피신한 중국인 신부 지키려… 다산 “혼자 죽지 않겠다” 채제공을 협박

<47> 주문모의 피신과 다산의 배교 문제 ◇밀고자 한영익은 다산의 사돈 주문모 신부를 검거하려면 그를 국경에서부터 데리고 온 윤유일과 지황, 그리고 계산동에서 그를 모...

2019.01.24

[정민의 다산독본] 겉으론 배교했던 다산, 한양 파견 온 중국인 신부 몰래 피신시키다

<46>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한영익의 밀고 ◇주문모 신부의 조선 파견과 입국 화성에서 신도시 건설의 망치 소리가 요란할 때, 조선 천주교회는 교회 재건을 위한 모색이 ...

2019.01.17

[정민의 다산독본] “사도세자 죽인 일을 후회” 영조의 진심 담은 친서가 공개되다

<45> 금등지서와 화성 건설 ◆채제공의 사도세자 관련 상소 ‘정감록’에 “진인이 남쪽에서 나오고, 도읍을 화산(花山)에 정하면 백성이 세금과 부역을 면하고 깃발이 길...

2019.01.10

[정민의 다산독본] 상중에 밀명 받은 다산, 공학적이고 치밀하게 화성을 설계하다

<44> 탁월한 화성 건설 ◇그를 불러 성제(城制)를 올리게 하라 영남만인소는 사도세자 서거 30주년을 맞아 의도적으로 기획된 남인들의 거사였다. 도산 별시 직후였고, 유성...

2019.01.03

[정민의 다산독본] 영남 유생 1만명 ‘사도세자 복수’ 상소… 시한폭탄이 터지다

<43> 안동 별시와 영남 만인소 ◇ 영남을 족쇄에서 풀다 1792년 3월 25일, 도산서원 맞은편 낙동강 남안의 넓은 평지에 새벽부터 구름 인파가 몰려들었다. 영남 유생들...

2018.12.27

[정민의 다산독본] 여막에 머문 다산, 반성과 다짐의 글 '여유당기'를 선친께 바치다

<42> 후회하는 마음의 집 ◇ 아버지께 바친 다짐 부친의 여막(상주가 무덤을 지키기 위해 그 옆에 거처하는 초가)을 마재에 마련하면서 정약종을 제외한 약현, 약전, 약용...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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